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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건 당사자의 어필에서 시작됐다.

“있지이, 곧 릭키의~ 생일이에요!”

릭키 생일은 40일 뒤. 즉, 다음 달이었다. 한 달도 넘게 남은 걸 벌써부터 주변에 소문낼 필요가 있나 싶지만 당사자가 그러는 걸 뭐라 할 수는 없었다. 굳이 삐딱하게 볼 이유도 없고. 그런 의미에서, 네네하는 아이패드로 달력을 꺼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게 43일 남았네요. 받고 싶은 선물이 있나요?”

마찬가지로 달력 확인을 하던 안즈도 릭키를 보며 물었다.

“평소에 가지고 싶었다거나 하고 싶었던 거 말이야.”

감자 칩을 입에 문 채 상황을 지켜보던 리리카가 고개를 기울인다. 어쩐지 대화가 이상하게 흐른다는 것 마냥. 언제나처럼 무표정했지만 우물거리는 속도가 조금 늦어졌다. 꿀꺽, 입 안에 있던 걸 완전히 삼킨 뒤에는 의문을 더 참지 않고 물었다.

“…릭키는 평소에 가지고 싶거나, 하고 싶은 걸 안 참지 않아?”

“이렇게 말을 꺼내는 걸 보면 이미 생각해 둔 게 있는 거 같아서.”

“릭키라면 충분히 가능하죠.”

안즈와 네네하는 이미 확신하는 투였다. 그리고 그건 정답이었다.

“응~ 그거 하고 싶어요, 그거.”

받고 싶다. 가 아니었다.

대체 뭘 하고 싶은 거냐고 묻는 시선들에 릭키의 설명이 시작됐다. 양팔을 벌리고 몸짓만으로 이렇고 저렇고, 하는 이야기를 꺼내며 설명해 준 덕분에 뜬금없는 스무고개가 시작됐지만 답은 금방 나왔다.

다만, 그게 정답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뿐.

“생일 카페?”

작은 카페를 빌려서 여러 명이 사진 찍을 수 있고, 거기에 생일인 사람이 주인공이며 모르는 사람도 들려서 같이 축하했다가 갈 수 있는 행사. 그런 설명을 거쳐 겨우 다다른 답변에 릭키만이 해맑게 웃었다.

“릭키의~ 생일 카페!”

생일 파티가 아니라? 그 말에도 꿋꿋하게 카페를 외치는 릭키였다. 저렇게까지 강하게 어필하니 당해낼 재간도 없다. 나름 재미있을 것 같기도 했고.

릭키의 생일 카페 개장 준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

 

세 사람은 카페에 모여 앉아 머리를 맞대었다. 릭키는 일방적인 통보를 마친 후 개인 임무로 자리를 뜬 뒤였다. 손으로 펜을 굴리던 네네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장소는 제가 섭외해두는 걸로 할게요.”

“흠. 장소가 카페면 다른 과자 같은 건 못 사가려나….”

“양해를 구하면 되죠. 그만큼의 보상도 하고.”

“그럼 나는 초대할 사람 목록을 추려볼게. 우리만 모이는 것 보단 여러 명이 오는 게 재밌을 테고. 반 애들도 웃겨서 올 것 같으니까.”

갑작스러운 기획치고는 진행이 빨랐다. 막상 계획해보니 실행하지 못 할 만큼 큰일도 아닌 덕분이다. 평범한 고등학생들이라면 금전적인 문제가 걸렸겠지만… 네네하도 있고, 정 안되면 릭키의 지갑을 열어도 될 일이다. 그간 무보수로 일해오던 것도 아니니까.

네네하가 아이패드 화면을 켰다.

“그런데 생일 카페는 생일 파티랑 어떤 게 다른 거죠?”

“장소가 집이 아니라 카페라는 점?”

“어… 음료가 싱싱하게 제공될 것 같아.”

역시나. 명확하게 답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생일 카페라는 이야기를 몇 번 듣기는 했지만, 그걸 직접 열어본 적이 있어야지. 아이패드 화면의 검색창에 생일 카페, 를 타이핑 쳤다. 엔터를 누르니 생각 이상으로 많은 참고 자료가 나왔다.

두 사람은 최근에 열렸던 것부터 하나씩 클릭해보며 본격적인 자료 찾기를 시작했다. 다른 한 사람은? …한 토끼는 꾸벅거리며 졸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익숙한 두 사람은 그를 굳이 깨우지 않기로 했다.

“사진이 많네요.”

“인형도 몇 개 있어.”

“케이크 같은 건 카페에 부탁하면 될 것 같고… .”

사진을 둘러보던 둘은 이내 무언가를 깨닫고 잠깐 서로를 바라봤다. 모든 생일 카페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물건 때문이었다. 거의 메인에 가깝고, 대부분의 리뷰어들이 사진으로 인증을 남겨 둔….

사람의 키와 1 대 1 비율로 제작된 등신대.

…는 생일 카페의 필수 조건인 모양이었다. 좀 과하지 않나? 싶다가도 릭키라면 좋아할 것 같다. 안즈가 졸고 있던 리리카의 앞에 놓여있는 디저트를 집어 물며 말했다.

“릭키보고 사진 찍자고 해볼까?”

“해달라면 흔쾌히 찍기는 할 거에요. 사진사도 섭외해야 겠네요.”

“웃기겠다. 제작까지는 얼마 안 걸리겠지?”

그렇게 오늘 회의를 마치고, 릭키에게 연락했을 때. 돌아온 답은 회의적이었다.

[ 릭키는 바빠요~ 리바이어선 때문에 장기 출장 중! ]

갑작스러운 해외 출장이 잡혀서 이미 공항에서 출국 수속 중이랬다. 워낙에 급한 건이라 네네하에게조차 언질이 늦어졌다고. 리바이어선에게 뒤늦게 따져봤지만 릭키는 이미 비행기에 탑승한 후였다.

그리고 사실, 릭키를 붙잡을 핑계도 애매했다.

생일 카페용 등신대 사진 찍을 거니 내일까지 있으라는 것도 웃기지 않던가. 어쩔 수 없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싶을 쯤에 졸고 있는 리리카가 손을 들었다.

“그거, 꼭 사진이어야 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두 사람에게 리리카는 길게 하품하며 말을 덧붙였다.

“미술 시간에 무슨 그림 그린다던데…. 캔버스도 컸어.”

그거 세 개 길게 붙이면 우리 키 정도 되지 않아? 그 말에 안즈와 네네하의 시선이 모였다. 그러고 보면 학교에서 진행하는 이번 미술 작업이 자유 주제였던가. 축제 전시용으로 사용할 거라던 것 치고는 굉장히 성의 없어서 제법 욕을 들어먹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 상황에서는 꽤 나쁘지 않은 소재라는 점이다.

“미술 수업이 주에 2시간 씩 3번인데… 조금 빠듯하지 않겠어요?”

“으음, 각자 분담하면 안 될까? 한 사람이 스케치하고, 그 다음 사람이 선 따고. 마지막 사람이 채색 하는 걸로....”

“그러면 오히려 시간적으로 촉박해요.”

아이패드 노트에 사람 모양의 스케치가 그려졌다. 그럼 다 같이 동시에 그리는 건? 벽화 같은 작업을 할 때 자주 쓰이는 방법이지 않냐. 는 말이 오갈 때. 리리카가 사람 스케치에 선을 그어 삼등분으로 나눴다.

“그냥 이렇게 나눠서 그리면 안 돼?”

사람은 세 등분 되었다. 머리, 가슴, 하체 정도로. 동물의 부위를 나누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뉜 모양새를 보던 두 사람이 낮은 침음을 흘렸다. 좀 잔인하기는 한데, 그래도 이거 꽤.

“괜찮은데?”

결과물이 웃길 것 같다는 점이 추가 가산점이다.

“제가 머리를 맡을 게요.”

“그럼 내가 하반신! 어쩐지 제일 쉬울 것 같아~!”

“…제일 귀찮은 게 남은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지. 하며 리리카까지 승낙하는 것으로 릭키 생일 카페를 위한 1차 회의는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미술 시간. 학교에 모인 세 사람이 캔버스 세 개를 합체하는 기행을 부렸다. 다행히 작품 주제가 자유인만큼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체험학습으로 자리를 비운 친구의 등신대를 만든다는 의리에 응원까지 받았다.

 

*

 

그렇게 시작된 작업은, 생각했던 이상으로 빠르게 진행됐다.

“우리 피부색이 좀… 각자 너무 다르지 않아?”

“아니야, 릭키는 원래 이렇게 생겼어.”

“릭키는 식물이라서 뿌리랑 줄기 색이 좀 달라도 괜찮아요.”

“그거 릭키가 들으면 서운해 할 거야.”

각자 맡은 파트를 조금의 합의도 없이 본인 스타일대로 그린 덕이 컸다. 중간에 괜찮은 걸까 하는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온 것도 같았지만, 매번 안 괜찮으면 어쩔 거야. 라는 결론으로 끝맺었다. 이미 색칠은 시작됐다.

돌이킬 수도 없었다.

 

*

 

생일 일주일을 남기고 릭키가 돌아왔다. 서프라이즈를 위해 등신대는 숨겨졌다. 릭키는 아무것도 모른 채 생일카페에 꾸며질 미니 폴라로이드 사진을 잔뜩 찍어갔다. 메인은 그게 아님을 알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갔다.

어쨌거나 모든 기획을 떠넘긴 건 릭키였으니, 견디는 것도 릭키여야 할 것이다.

 

*

 

대망의 생일 날. 네네하가 섭외해 둔 카페에는 여러 풍선들과 사진, 각종 음식들로 꾸며져 있었다. 반 친구들도 방문했고 릭키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도 여럿 들렸다. 일찍이 릭키가 네네하에게 받은 지도로 홍보를 돌린 덕분이었다.

그리고 생일 카페의 주인공은 하루 종일 카페에서 못마땅한 얼굴로 자리를 지켰다.

“왜~ 릭키보다 저게 더 인기 있는 거예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얼굴로, 등신대에 몰려 웃음을 참지 못하는 이들에게 투정을 부려봤지만. 그마저도 끅끅 거리는 소리에 묻힐 뿐이었다. 뒤에 있던 안즈가 코를 슥 닦으며 뿌듯하게 말했다.

“작품이 너무 잘 나와서 진짜를 이겨버린거지.”

“너무 섭섭하게 생각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은 걸 해줬잖아요?”

“내 실력이 너무 대단해서 그래.”

성공적인 생일 카페였다. 적어도 행사 기획자들에게는 노력한 만큼 큰 갈채를 받았으니까. 생일 주인공의 의견은… 아무래도 좋지 않을까? 생일 카페가 마치며 등신대는 릭키의 집으로. 정확히는 네네하의 정원에 세워졌다.

결국 릭키도 sns 프사를 등신대 사진으로 바꾸었으니, 나름의 해피엔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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