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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시발점은 지극히 사소했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의 대부분이 언제나 그랬듯이. 

S시의 공립고등학교 부근, 'Holly Solly' 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이 가게의 원래 이름은 'Holly Molly'. 매출이 잘 나오지 않는지 한 장소에서 오래 머무르는 일은 없었다. 이동하는 도시의 첫 글자를 따서 항상 간판을 바꾸기 때문에 같은 가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다. 어제까지 멀쩡히 영업하는 듯 싶다가도 내일이면 문을 닫고 사라지는 이상한 가게, 그것이 Holly Molly를 겪은 사람들의 평균적인 소감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잡다한 물품을 진열해놓은 잡동사니 판매점이나 장난감 가게, 잘 봐줘야 앤티크 상점이나 될까 싶은 작은 매장이고, 실제로 안으로 들어가 보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전면 유리창에 놓여 있는 디스플레이 용품들을 포함해 가게 안에서 파는 것들은 해외 각국에서 구해온 다양한 앤티크 상품으로, 실내를 장식하는 것 이외에 효용가치라고는 아이들의 장난감으로나 쓰일 만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가게 한 구석에 놓여 있는 수제 향수 판매 테이블이 생뚱맞게 보일 정도로. 
가끔 '소원을 이루어주는 물품을 판다더라'는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로 북적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호젓한 -을 넘어 종종 썰렁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니게이드 바이러스를 감지할 수 있는 누군가라면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조금만 감이 좋은 오버드라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가게 곳곳에 진열되어 있는 제품들 사이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흘러나오는 레니게이드 바이러스를 눈치챌 수 있엇다. 이곳이 평범한 가게가 아니라는 사실을 들어오는 이에게 넌지시 암시하기라도 하듯. 

이곳은 FH의 연구 셀 '키보우奇謀'의 본거지였다. 
그리고 키르 콰이엇의 직장이자, 집이자, 대부분의 일상을 구성하는 곳이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문을 열고, 하루종일 가게를 지키다가 문을 닫고 불을 끈다. 손님들을 상대하고 물건을 팔고 계산을 하는 것이 업무의 대부분이다. 가끔 심심하면 산책을 하다가 가까운 편의점에 가서 사탕을 두어 봉지 사고는 카운터에 있는 사탕 바구니 안에 쏟아붓기도 했다. 물건을 사가는 사람에게 회원카드를 보여주며 가입을 권유하기도 한다. 승락율은 대체로 99%. 겉으로 보기에 지극히 평범한 활동으로 가득찬 하루하루.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는 비일상이 배어 있다. 

이곳의 '제품'들 중 많은 수는 레니게이드에 감염된 EX레니게이드이거나, EX레니게이드가 아니더라도 다른 이들의 레니게이드에 반응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서, 놓아둔 '제품'들 중에서 탈출하거나 폭주한 것들이 없는지 살피고, 하루종일 그런 일이 없는지 지키는 것이 기본적인 그의 일이다. 손님들을 상대하고 물건을 팔고 계산을 하는 대부분의 일은 그에게 사소한 작업이지만, 거를 수 없었다. 언제 '기적'을 만들어줄 '제품'이 팔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키보우에서는 이렇게 레니게이드에게 침식당한 물건-EX레니게이드-들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것이야말로 '소원을 이루어줄 기적'을 불러올 물건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기적이라는 것이 구매자에게 어떠한 결말을 불러오더라도 그들의 입장에서는 관찰할 가치가 충분했다. 레니게이드의 예측불가능한 활동을 하나라도 더 확인하고 분석할 수 있다면, 언젠가 궁극적인 '기적'을 불러올 수도 있을 테니까. 그것이 셀 리더인 로렐라이가 추구하는 욕망이었고, 이 셀의 모두가 공감하는 바이기도 했다. 
그러니 산책하는 동안 그렇게 팔린 '제품'들의 뒤를 추적하며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 역시 빼놓지 않고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들어온 이들의 마음을 안심시켜 회원카드를 빙자해 정보를 확인하는 일 역시 중요했고, 그 과정에서 키르 콰이엇이 가진 솔라리스로서의 '능력' 역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힘이 있는데 다른 이들을 구슬리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기에 가게 안에는 항상 기묘할 정도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향이 떠돌고 있었다. 

그날도 키르 콰이엇에게는 평범한 날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날따라 가게에는 손님이 없었다. 셀의 막내인 미노루는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간다며 며칠 동안 자리를 비웠고, 같이 종종 가게를 보곤 하던 에이전트인 나노카도 오늘따라 볼일이 있다며 일찌감치 나갔기에 실내는 여느 때보다 조용했다. 
이렇게 사람도 손님도 없을 때 키르 콰이엇이 하는 일이란 대체로 두 가지다. 가게 한 구석에 만들어진 자신의 작업대 위에서 알코올에 향을 넣어 '향수'를 만들거나, 가게를 한 바퀴 돌며 진열대에 놓인 '상품'들을 점검하거나. 오늘의 키르 콰이엇에게 향수를 만들고 싶은 기분 따위는 없었으므로, 잠시 고민하던 끝에 그는 후자를 선택했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일은 키르 콰이엇이 평상시처럼 가게를 정리하던 데에서 시작한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가게를 정리하던 키르 콰이엇의 눈에 제법 큼직한 나무상자가 하나 들어왔다. 분명 지난 번에 선반들을 정리했을 때는 보지 못하던 새로운 물건이었다. 손때가 묻어 고급스럽게 반짝거리는 나무상자는 구석구석 멋스러운 놋쇠 장식을 달고 있었다. 레니게이드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상자 그 자체만으로도 누군가 찾을 법한 물건이었다. 
닦아서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둘까. 키르가 상자를 가지고 카운터로 돌아오려고 몸을 돌리자, 타이밍 좋게 가게의 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한 사람은 은발머리를 붉은 리본으로 잘 묶어내린 단정하고 깔끔한 인상의 중년 남성. 또 한 사람은 특이하게도 한쪽을 노란 장미로 가린 안경을 쓴 금발의 여성. 셀의 구성원인 키라 아유무와 사사야키 치히로다.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며, 키르는 손에 들고 있던 상자를 다시 카운터에 내려놓았다. 

"리더가 또 새로운 걸 가져왔나요?"
"음, 아마도요?"

키라 아유무의 질문에 대답 대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키르는 상자를 집어들었다. 속은 비어 있는 듯 크기에 비해 무게는 제법 가벼웠다. 오래된 물건이려나. 혹시라도 쓸만한 곳이 있을까 싶어 상자를 만지작거리던 키르의 손가락이 상자 중심에 맞물려있는 걸쇠를 발견하고 그것을 열어젖히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상자의 걸쇠를 열자마자 레니게이드가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키르의 손에서 날아간 상자는 허공에서 거대한 톱니바퀴를 뽑아내 회전하며,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배출구를 뽑아 증기를 뿜어냈다. 마치 살아 있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전에 어느 틈엔가 재조립되어 팔과 다리를 만들어낸 그것은 금세 주변에 널려 있는 장식장을 엉망진창으로 헤집어댔다. 와장창! 깨질 법한 것들이 날아가며 깨지는 소리와 금속으로 된 물건들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가게 안을 울렸다. 빌어먹을, 나중에 정리할 생각에 눈앞이 순간 캄캄해졌지만 그건 나중 문제였다.

"―뭐야, 얌전히 좀 있어봐."

키르 콰이엇을 중심으로, 순간적으로 안개처럼 짙은 향기가 주변으로 뿜어져나갔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아니, 눈 앞에 상대가 칼을 들고 있다고 하더라도 무심코 긴장을 풀어버릴 만큼 달콤한 향기였다. 하지만 그 향기는 상대가 내뿜어대는 스팀에 막혀 상자에 닿기도 전에 상쇄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도리어 이번에야말로 방향을 잡았다는 듯, 향기가 뿜어나온 쪽으로 길게 팔을 늘렸다. 톱니바퀴와 유리조각, 기어들이 기괴하게 접합된 팔이 쭉 늘어나며 키라 아유무와 키르 콰이엇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길게 늘어나며 휘둘러대는 팔을 한 차례 가볍게 피한 키라 아유무가 곤란한 웃음을 지었다.

"이런이런, 얌전하게 있어 주는 편이 좋을 텐데요. 역시 제압해야 하려나요?"
"젠장, 나노카 누나도 미노루도 없는데! 하필이면 지금―"

키르는 머리라도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렇게 되면 날뛰는 EX 레니게이드를 잠재우기 위한 방법으로는 무력밖에 쓸 수 없는 셈이다. 셀에서 무력을 담당하는 두 사람이 없는 상황에 터지는 물리적인 사건이란 언제나 골치아프게 마련이었다. 그나마 지금은 키라 아유무와 사사야키 치히로, 두 사람이 더 있으니 다행이라고 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상자는 향기에 진정하기는 커녕 레니게이드의 기운을 받아서인지 더한층 왕성하게 움직여댔다. 폭주하듯 날뛰는 상자를 본 치히로의 발 밑으로 순간 검은 영역이 펼쳐지며, 손에서 날아간 그림자가 검은 토끼로 변했다. 검은 토끼는 톱니바퀴와 기어로 만들어진 상자의 팔다리를 튕겨내 부서질 뻔한 장식장 하나를 기적적으로 사수했다. 짧은 한숨을 내쉰 치히로가 고개를 돌렸다.

"율 씨는요?"
"아, 맞다!"

사사야키 치히로의 말에, 키르는 황급하게 카운터 옆으로 뛰어들어 구석에 놓아둔 오래된 항아리를 흔들었다. 북유럽풍 문양이 가득 새겨져 있는 항아리를 흔들자 안쪽에서 묵직한 유동체가 움직임에 맞춰서 흔들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뚜껑을 벗겨내자 안에 들어 있는 핏빛의 유동체가 눈에 들어온다. 좋아, 어디 간 건 아니군. 항아리를 흔들던 손을 잠시 멈추고 뚜껑을 벗겨낸 키르가 안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율! 유루유루!! 일어나 봐!!!" 

그러나 항아리 안에서 찰랑거리던 붉은 유동체-사실, 율타이드라는 이름의 레니게이드 비잉-는 마치 달팽이처럼 몇 가닥의 뿔을 삐죽하게 내밀었을 뿐, 별 반응이 없었다. 인간으로 치자면 졸리다거나 귀찮다는 얼굴이라고 보일 법한 행동이었다. 키르는 저도 모르게 항아리 안에 대고 소리를 빼액 질러버리고 말았다.

"이런 순간에 자면 어떡해!"
"아하하, 우리끼리 어떻게든 해야겠네요."

치히로가 고개를 흔들고 다시 한 번 시선을 상자에 고정시켰다. 키라도 어느 샌가 자리를 잡은 듯 조금 전보다 여유가 돌아온 표정으로 상자를 바라보았다. 세 사람의 주변으로 어지럽게 향기가 얽히고 그림자가 살아 움직이듯 춤추기 시작한다. 

전투의 시간이었다.

――――――

공방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세 사람이 이리 뛰고 저리 뛸 때마다 얽혀 있던 향기들이 상자에 스며들며 금속으로 만들어진 조직들을 부식시켜 나가고, 검은 그림자들이 날붙이라도 된 듯 허공을 날아 부식된 조직들을 계속해서 잘라냈다. 
하나씩 조각들이 떨어져 나가며 상자의 움직임이 점차 느려졌다. 느릿느릿 휘두른 공격을 가볍게 피한 치히로의 발밑에서 그림자가 뻗어나갔다. 그림자는 상자를 봉인하듯, 검게 물든 무형의 날을 톱니바퀴와 기어와 나무조각의 틈새로 꽂아넣었다.

"됐다!"

키르가 소리를 지르는 것과 동시에, 상자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딸랑―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셀의 리더인 로렐라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엉망이 된 가게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품 안에는 어디서 났는지 제법 커다란 펭귄 인형을 안은 채였다. 아하하, 가장 먼저 치히로가 난감한 웃음을 흘렸다. 키르와 키라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그저 치히로를 따라 웃고 말았다. 

"정말이지~ 말 안 해줄 거야?"

눈을 흘기며 로렐라이가 엉망이 된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는 표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막 움직임을 멈춘 거대한 톱니바퀴 상자가 떡하니 가게 중앙의 난장판에 서 있었으니 모르기가 더 어려운 일이겠지. 하지만 무언가의 '연구'가 '실패'로 끝나는 일은 키보우에서 드물지 않았고, '기적'은 어찌되었든 손에 넣기 어려운 법이었기에. 

"좋아. 하지만 그렇게 있는 건 '요정'답지 않으니까―" 

'요정'이란 키보우에서 셀원들을 이르는 말이었다.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과 기적을 가져다주는 요정들. 물론 누군가는 알 것이다. 요정들에게 소원을 빌었을 때 언제나 그 소원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그런 의미에서, 그들에게 붙은 '요정'이라는 호칭은 제법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었다.
로렐라이가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세 사람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튕기자, 마술처럼 세 사람의 옷이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 상자가 저지른 난장판 사이에서 돌아다니느라 엉망이 된 옷은 간데없고, 멋진 실크햇과 풍성하게 휘날리는 옷자락들이 세 사람의 몸을 감싼다. 19세기쯤에나 볼 수 있을 법한 고전적인 실루엣이지만 군데군데 어울리지 않을 듯한 톱니장식이며 펑크한 금속장식들이 붙어 있다. 말하자면, 방금 눈 앞에서 동작을 멈춘 상자와 제법 잘 어울릴만한 스팀펑크풍의 의상이었다. 

"벌이야. 오늘 하루동안은 그거 입고 있도록."
"이런 거 입으면 청소는 어떻게 해요?"
"그거야~ 키루룽이 알아서 해야지~" 

싱글싱글 웃는 얼굴의 로렐라이 역시 어느 샌가 세 사람과 어울리는 옷으로 바뀌어 있었다. 양 손에 든 그 총만은 장난감인지 진짜인지 알 길이 없었지만. 잠깐만― 그 총, 설마 인형으로 만들어낸 건가요? 정말이지, 모르페우스란 쓸데없이 편리하다니까. 난감한 표정으로 속생각을 얼굴에 여과없이 드러내며, 키르 콰이엇은 옷자락을 만지작거렸다. 어색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한 키르와 대조적으로 키라는 여유로운 얼굴로 머리 위에 얹힌 실크햇을 자연스럽게 고쳐썼다. 

"하지만 이거 제법 멋지지 않나요? 키르도 치히로도 잘 어울리는걸요." 
"아하하, 감사합니다."

키라의 칭찬에 곤란한 웃음을 지으며 치히로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분명히 방금 바뀐 옷인데도 자연스럽게 매무새를 가다듬는 걸 보면, 확실히 쉬고 있다고 해도 모델이었던 때의 행동이 몸에 배어 있어서겠지. 그런 세 사람을 보고 있던 로렐라이가 불쑥,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내밀었다. 

"다들 잘 어울리는걸? 사진 찍자!"

누가 잡을세라 키르는 내밀어진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니까, 거의 비슷하게 손을 뻗은 키라 아유무보다 조금 더 빨리 낚아챌 정도는 됐다는 말이다. 손에 카메라를 든 키르가 약간 의기양양한 표정이 되어서는 세 사람을 향해 몸을 돌렸다. 

"내가 찍을게요. 포즈 잡아봐요."
"에~ 키루룽도 같이 찍어야 되는데~"
"이거 찍고요."

부우,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던 로렐라이는 카메라 렌즈가 향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를 짓는다. 

"자자, 모처럼이니까 멋지게 찍자구." 

양쪽으로 손을 뻗어 키라와 치히로가 도망가지 못하게 로렐라이가 어깨를 끌어안는다. 곧 포즈를 취한 세 사람의 모습이 조그마한 파인더에 잡힌다. 동그란 버튼을 누르면 찰칵, 셔터음과 함께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희끄무레한 종이 한 장을 뱉어낸다. 펜을 가져와 여전히 삐뚤삐뚤하고 서툰 글씨로 사진 위에 오늘 날짜를 적어넣는다. 

모든 것이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을 어느 날의 일상 한 조각. 

서서히 세 사람의 모습이 드러나는 사진을 들고, 키르 콰이엇은 조금 웃었다. '일상'이라는 것이 생긴 후로― 그러니까, '키보우'에 온 다음부터 지을 수 있게 된 표정이었다. 

"…저기, 끝났으니까 볶음밥이라도 먹을래요?"
"키루룽은 무슨 그런 얘기를 이런 옷 입고 있을 때 해?"
"그럼 언제 해요? 빨리 먹을지 말지나 얘기해 봐요, 리더."
"아, 저는 찬성이에요."
"다들 정말이지, 태평하다니까요."
"이거 안 치울 거야?"
"먹고 치울게요."

키르는 태연하게 대꾸하고는 입구의 팻말을 'OPEN'에서 'CLOSE'로 돌려놓았다. 뒤에서 못말리겠다며 불평하던 로렐라이가 짐짓 짓궃은 미소를 띈 얼굴로 키르의 옆구리를 찔렀다. 치히로의 웃음소리가 이어지고, 그런 세 사람의 등을 키라가 가볍게 떠밀었다. 밥이나 먹어요, 짧은 중얼거림과 함께.
이제야말로 잠시간 숨을 돌릴 시간이었다.

사건의 끝은 지극히 평온했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의 대부분이 언제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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