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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야!”

“앗, 먼저 나가면 반칙이에요!”

차가 멈추자마자 뛰어내린 아이들은 트렁크에서 튜브를 꺼내 곧장 바다로 달려갔다. 하얀 모래사장, 파란 바다, 그보다 더 파란 하늘.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8월의 바닷가. 아이들은 어느새 겉옷을 벗어던지고 수영복 차림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중이었다. 녹초가 된 어른들은 준비운동을 하고 들어가라는 둥 잔소리를 시작했으나, 그보다도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좋아 희미하게 웃었다. 준비부터 출발까지 우여곡절 뿐인 휴가계획이었지만, 그래. 도착했구나. 하즈키는 얼얼한 허리를 문지르며 트렁크에서 짐을 내리기 시작했다.

마츠자카 지부의 여름 휴가 일정이 나왔다. 저녁 식사 시간에 그 얘길 하면서도 히이라기 리히토는 그리 기대하지 않는 눈치였다. 아키나는 휴가때 뭘 할지 머리를 굴리다 그 낌새를 알아채지 못한 듯 했으나… 하즈키는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는 몇 번인가 한여름에 벌어진 UGN 습격 작전에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뭇 에이전트들이 “대체 왜 펄스 하츠 놈들은 휴가 때만 골라서 습격하는거야!” 같은 소릴 울부짖었던 것이다. FH에는 휴가 같은게 없으니까, 시간감을 재지 못했던 거고… 뭐… 굳이 휴가를 골라서 공격한 건 아니지만… 어쩐지 속으로 변명을 주절주절 늘어놓고야 만다. 본인이 한 일도 아닌데.

“작년 여름은 어떻게 보냈어요?”

“작년엔… 마츠자카에는 큰 일 없었어요. 단지 옆 도시에 일이 생겨서 지원을 나가느라.”

구운 연어를 한올 한올 분리할 기세로 조각내던 아키나가 볼멘소리를 했다.

“내가 도와주러 가겠다고 했는데 필요없다잖아. 한 명이라도 더 있었으면 빨리 끝났을 텐데.”

“임간학교 출발하는 날이었으니까. 데려가서 다치기라도 하면 내가 너희 아빠를 무슨 낯으로 보겠니.”

“칫, 그런거 안 가도 된다고 했는데….”

다만 하즈키는 그 때 반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 아키나가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으므로, 민망함에서 비롯된 투정임을 알았다. 자신이 없는 동안 이 아이는 제대로 고등학생의 삶을 산 모양이었다. 친구도 꽤 사귄 것 같고. 본인에게 물어보면 누가 친구냐고 할 것 같지만.

“그럼 둘이서 어딜 갈 일정은 없었던가 보네요.”

그 말을 들은 리히토의 젓가락질이 잠시 멈추었다가, 태연한 얼굴로 계란말이를 집으며 의문에 답했다.

“자리를 비우기가 그랬어요. …당신이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아.”

“…아빠 바보지?”

“음, 바보네.”

세상 둘도 없는 바보로군. 머쓱한 웃음과 함께 저녁 식사가 마무리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꼭 휴가란걸 가 보고 싶다는 뜻이죠. 여기요, 도시락. 히이라기 씨 돌아오면 전해주시고, 이건 남은 재료로 만든 간식이에요. 드세요.”

“오, 고마워. 요리 실력 많이 늘었던데 기대되네.”

“기대할 만큼은 아닌걸요.”

하즈키는 가끔 도시락을 일부러 늦게 만들어 지부로 들고 오곤 했다. 운이 좋으면 점심 식사를 같이 할 수도 있는거고, 리히토가 자리를 비우거나 바쁘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 얼굴 보는 건 반가우니까. 오늘도 그런 마음으로 도시락을 싸 들고 왔다가 몇 시간 정도 지부장 대리가 된 미나즈키 쇼우를 만난 참이었다. 리히토는 급한 회의가 있어 떠났다고 하고. 조금 입을 삐죽였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리히토는 언제나 바빴다. 때를 가려서 바쁜 것도 아니었고. 그게 UGN의 삶이겠지.

“미나즈키 씨는 계획 있어요?”

“아~ 이번 휴가 때는 딱히. 일정이 안 맞아서 혼자 보낼거야.”

쇼우는 하즈키가 들고 온 종이봉투를 열어 곱게 담긴 러스크를 발견하고는 오호, 하고 웃었다. 설탕과 시나몬이 뿌려져 있었다. 그럼 점심 메뉴는 샌드위치구나. 바스락 소리를 내며 하나를 집어들자, 잠시 고민하던 하즈키가 “그럼 같이 바다라도 갈래요?” 했다.

“갑자기 바다?”

러스크를 베어문 쇼우의 고글 액정에 의문스러운 아이콘이 떠올랐다. 장난스럽기도 했다. 와삭와삭 소리와 함께 문답이 오간다. “여름하면 바다인 것 같아서.” “너무 단순한 사고방식인데.” 하즈키는 이럴 때에 으레 둘러대는, 자신은 노이만이 아니라는 변명을 주워섬긴 뒤 말했다.

“작년에는 휴가 대신 출장이었다길래요. 올해도 갑자기 일이 터지면 취소되겠지만~ 시작도 전에 관두기보다는 낫지 않겠어요.”

“그 말엔 동의해~ 제 때 휴가 못 간지 몇 년인지, 참.”

“당신은 마츠자카의 주 전력이니 더하겠죠.”

“전투원이 좀 늘면 좋겠어, 역시.”

쇼우는 이제 아예 자리를 잡고 종이봉투 속 내용물을 먹어 없애고 있었다. 리미트 이터가 아니라 러스크 이터… 실례. 무심코 해 버린 무례한 상상을 접어둔 하즈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하, 그래서… 갈거죠?”

“혹시 모르니까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찾아봐줘.”

“알겠어요.”

꽃집으로 돌아와 밀린 일을 해치우고 배달을 마친 시각이 마침 하교 시간과 맞닿았던 탓에, 하즈키는 자연스레 학교로 트럭을 몰아 갔다. 아키나 플라워라는 상호가 떡하니 붙은 작은 트럭이 교문 근처에 멈춰서자 몇몇 학생들이 아는 체를 하며 다가왔다. 아키나의 반 친구이기도 하고 가끔 가게에 들리는 손님이기도 해서 하즈키도 그 아이들을 알았다. 기말고사는 잘 봤냐, 여름방학 계획은 있냐 같은 가벼운 대화 끝에*-친구 아빠의 잔소리였다, 분명-아이들은 손을 흔들며 트럭을 떠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달음박질쳐오는 파란 머리 아이가 한 명 있었으니…

“아빠!”

“아키나~!”

아키나는 우다다 달려 교문을 빠져나와 즉각 조수석의 문을 열어젖혔다. 아침에도 봤는데 너무 극성으로 보일까 싶어 학교까지 데리러 오는 일은 잘 하지 않지만, 이렇게까지 좋아하는데 못할건 또 뭐냐 싶다. 그리고 아키나의 뒤로 종종걸음쳐 다가온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하즈키 씨…!”

“응, 노조미 군도 안녕.”

노조미는 여느 때 처럼 열성적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는데, 하즈키는 자신이 트럭에 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같이 나오는 걸 보니 아무래도 하교하다 마주친 모양이다. 아키나가 노조미를 발견했다고 같이 가자며 붙들 아이는 아니니까, 아마 노조미 쪽에서 발견했겠거니… 하즈키는 두 사람이 친하게 지내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노조미를 만난 게 달가웠다.

”바쁜 일 있니? 도서관쪽으로 가는 거면 태워줄까?”

“아, 아뇨! 괜찮아요! 그렇게까지는!”

“뭘, 혼자 걸어가려면 심심하잖아.”

아키나는 세 사람 타기엔 트럭이 너무 좁다며 볼멘 소리를 했지만, 군말없이 보조 좌석으로 몸을 움직였다. 리히토와 셋이서 탈 때도 그 자리가 아키나의 지정 좌석이었다. 하지만 창창한 나이의 고등학생이 타기에는 조금 좁아 보이긴 했다.

“탈거면 빨리 타! 아니면 진짜 간다?”

“가는 길이니까 괜찮아. 얼른 타렴.”

“그, 그럼… 실례합니다….”

노조미는 머쓱해하며 트럭에 오르려다가 검집을 깡 소리나게 부딪히고야 말았고, 하즈키는 하하 웃으며 검을 풀어 좌석 뒷편에 놓는 것을 도왔다. 역시 차가 작긴 작네.

안전벨트 잔소리가 지나간 후 트럭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도서관-마츠자카 지부-까지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였고, 바쁜 일이 있다고는 듣지 못했으므로 여유로운 속도였다. 하즈키는 가는 길에 애들한테 뭘 먹일지 궁리하며 입버릇처럼 성적의 안위와 여름방학 계획을 물었다.

“저는, 음… 원장님도 뵈러 가고….”

“휴가때?”

“아, 그 때는 아마 지부에 있을 거예요. 시간이 안 된다고 하셔서.”

노조미는 익숙하다는 듯이 예정을 말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부에 남아 있으면 딱히 휴가는 아니지 않을까… 방에서 쉬는 것만으로 휴가가 되는 걸까. 사실 그렇게 있는 건 쉰다기보다 5분 대기조여서, 무슨 일이 생기면 도와주러 나가게 될 것이 뻔했다.

“그래요? 그러면 노조미 군도 우리랑 같이 바다에 가는 건.”

“뭐?! 우리 바다 가?!”

아차, 하고 놀란 하즈키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뒤따르는 차가 없어 다행이었다. 백미러를 확인하는 척 하며 훔쳐본 아키나의 눈빛은 배신감으로 불타고 있었다. 아마 자신만 빼고 얘기를 나눴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계획을 세우는 도중이라 제대로 말을 전하지 않았을 뿐인데.

“…음, 물어보려고 했는데 깜박했다.”

“그걸 잊어버리면 어떡해?!”

“미안, 미안… 하지만 아직 히이라기 씨 한테도 얘기 못 꺼냈어. 가는게 어떻냐 정도라서.”

히이라기도 몰랐던 거구나, 하고 잠깐 고민하던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들었다.

“…수영복 사야겠네.”

“확정이구나…. …그래서? 노조미 군은 갈 생각 있어?”

어색하게 웃고 있던 노조미가 당황한 듯이 눈을 굴리며, 가족여행에 제가 끼어도 되는지 물었다. 하즈키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사래를 쳤다.

“뭘, 미나즈키 씨도 불렀는데.”

아차. (5분 사이에 두번째)

“아빠아아아또오오오오!!!”

아키나의 노성이 트럭을 쩌렁쩌렁 울렸다.

“아니, 그러니까… 원래는 저녁 먹으면서 얘기하려고 했었단다. 그리고, 노조미 군. 어차피 지부원들이 다 같이 가족인거 아니겠니.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동료인데.”

하즈키는 가족 어쩌고 하는 말을 변명처럼 둘러댔지만 딱히 거짓말도 아니었다. 그는 제 사람이나 가족의 경계를 명확하게 그어놓는 타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츠자카 지부 사람들이라면, 특히 그 도시에서 함께 짧지않은 시간을 보낸 이들이라면 충분히 그 울타리 안에 들어올 자격이 된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테두리 안에 가두는 것을 자격이라 부르는 것도 웃기지만. 도서관으로 향하는 갈림길에서 뜬금없이 우회전을 해 버린 하즈키는 익숙한 길을 벗어나 어리둥절한 두 사람의 표정을 힐끔 보고는 웃고 말았다.

“…가족이니 뭐니 하는 얘기 꺼내지 않더라도, 딸애의 친구를 여행에 데려가지 못할건 또 뭐고. 가고 싶다면 같이 가는 거야.”

그 말에 노조미는 조금 시간을 들여 고민하다 환하게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네… 저도 아키나 언니랑 같이 바다 가고 싶어요!”

“아키나도 괜찮지?”

“…주말에 쇼핑몰 갈 테니까 일정 비워 놔.”

“네!”

그리고 들뜬 두 사람은 바다에 가면 해야 하는 일들(전부 어디서 잘못 주워들은게 분명했다)을 늘어놓으며 준비물 리스트를 짜기 시작했는데, 가만히 놔 두었다간 서핑보드까지 살 기세였으므로 하즈키는 패스트푸드점에 들러 햄버거 세트와 아이스크림을 사서 안기는 것으로 대화를 일시 중단 시켰다. 그리고 저녁 시간에 휴가 계획 이야기를 꺼냈다가, “바다에 가는 건 오랜만이네요. 좋아요. 그런데 아키나—입맛이 없니?” 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30분짜리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결론적으로 바다에 가는 마츠자카는 상기한 다섯 명이 되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휴가 날짜가 다르거나, 같다고 해도 지부장과 미나즈키가 둘 다 지부를 비우는데 자신까지 비울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제안을 고사했다. 그 후 바쁜 학생들과 그보다 더 바쁜 어른들에게 여행일정을 자신에게 맡기라고 큰소리를 쳐 둔 하즈키는 지부에서 가장 가까운-*그나마 두시간 거리였다-*해변과 그 해변 곁의 펜션을 찾아 예약하고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며 여행준비를 시작했다. 튜브? 필요하지. 파라솔… 빌릴 수 있다고 들었지만,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아니면 그늘막 텐트라거나. 바다에 들어갈 생각은 없지만 수영복은 있는 게 좋겠다. 기왕 흥을 내는 거 하와이안 셔츠도 커플로 맞춰 입으면, 주책이라고 하겠지만, 즐겁기야 하겠지. 아키나는 노조미와 쇼핑을 간다고 했으니 용돈을 조금 더 보내주고…. 너무 들뜬 나머지 새벽까지 핸드폰을 붙들고 있느라 리히토에게 두 번 주의를 듣고 한 번은 혼나기까지 했다.

그 즈음 작은 문제가 발생했는데, 운송수단이었다. 어른 셋 중 누구도 다섯명을 실어나를 자가용이 없었던 탓이다. 하즈키의 트럭은 아키나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3인승이었고, 그게 5인승이 된다고 한들 승차감이 그다지 좋지 못했으므로 2시간동안 일행을 태우고 운전하기엔 어울리지 않았다. 리히토와 쇼우는 마츠자카에서 벗어날 일이 그다지 없고, 필요하다면 발로르 에이전트에게 디멘션 게이트를 부탁하는 편이 빨랐으므로 마땅한 차가 없는 건 동일했고…. 결론적으로 하즈키는 9인승 차량을 한 대 렌트하기로 했다. 대충 트럭이랑 비슷한 감각으로 운전하면 되지 않으려나. 아침 일찍 출발할 것을 염두에 두고 전날 밤부터 렌트하기로 업체와 연락을 해 뒀다. 준비는 만전이었다.

뒤를 이은 큰 문제는 여행이 2주 남았을 무렵 발생했다.

“다 끝났어….”

“아직 안 끝났어요, 여보. 혹시 모르잖아요.”

“그치만… 하필이면 태풍이라니….”

“예보가 틀릴 수도 있잖아, 아빠….”

“그래요. 애보다 당신이 더 실망하면 어떡해요?”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갑작스레 태풍이 북상하는 바람에 일기 예보가 크게 변경된 것이다. 태풍 영향권은 정확히 마츠자카 시와 휴가지로 잡아둔 해변가를 포함하고 있었고, 하즈키는 눅눅해지는 날씨와 함께 죽어라 눅눅해지고 말았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앞에 두면 어른은 무력해지는 법이다.

“…혹시 아는 신격 레니게이드 비잉 없나요? 비와 관련된 전승이 있으면 더 좋고….”

“…겨우 휴가를 위해서 신의 힘을 빌리자는 거예요?”

“좋은게 좋은 거잖아요….”

칭얼거리는 하즈키를 빤히 보던 아키나가 턱을 괴고는 슬그머니 고갤 돌렸다.

“이상하게 아빠가 점점 더 애가 되는 것 같아.”

“역시 그렇지?”

“…사람을 앞에 두고 그런 소리 하는거니?”

“사실이잖아.”

“사실이잖아요.”

“….”

휴가 날짜를 바꿀 수 없으니, 비 오는 해변에라도 가서 바베큐라도 해 먹자는 결론을 내리는 수 밖에 없었다. 나름 운치 있을거라는 말을 하즈키가 아니라 아키나가 했다. 다들 바다에서 놀지 못하는 걸 아쉬워하긴 했으나 휴가 일정을 아예 취소하는 것 보단 나았다. 기적적으로 태풍이 길을 벗어날 수도 있는 거고…. 그렇게 기다리다보니 다행히도 태풍이 궤도를 벗어나 며칠 이르게 비를 흩뿌리는 정도로 끝이 났고, 하즈키는 갑작스런 장대비에 화분을 모두 들여놓느라 쫄딱 젖었음에도 불구하고 온종일 싱글벙글 웃고 다녔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 문제는, 휴가 바로 전날부터 발생하기 시작했다.

“—온 도시에 폭탄이라니 미친 놈들 아니에요?!”

[나도 동의! 그나저나 전 직장에 대한 평가가 박하네?]

“하나! 제가 셀을 굴렸으면 이런 짓은 안 해요! 그리고 둘! 좋게 생겼어요? 또라이 집단이라니까!”

[칠드런도 듣고 있는 회선이니까 입 조심 좀 해요!]

얼마 전 미나즈키를 필두로 한 작전팀이 마츠자카에 숨어든 셀 리더를 한 명 생포했는데, 부하들이 그를 내놓으라고 협박하며 시청을 비롯한 도시 곳곳에 폭탄을 설치한 것이다. 먼저 휴가를 떠난 사람들이 있어 안 그래도 없는 현장 인력이 더 부족해진 마츠자카 지부로서는 하즈키의 꽃집을 닫고 노조미와 아키나에게 연락을 취할 수 밖에 없었다. 하필이면 두 사람이 다니는 학교에마저 폭탄 반응이 있는 터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화약과 전선으로 이루어진 폭탄이 아니라 레니게이드 바이러스를 응축한 물건이라 RC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해체는 어렵지 않았다.

[학교팀, 폭탄 발견했습니다…! 해체 들어갈게요!]

“조심해!”

[여차하면 얼려서 강에 던져 버릴거니까 괜찮아!]

“그게 더 걱정이니까 조심해줘!”

하즈키는 레니게이드 반응을 나타내는 단말기를 손에 들고 헉헉대며 뛰었다. 사람들은 급하게 뛰어가는 하즈키를 보고 조금 놀란 듯 했다가 익숙하게 시선을 거두고 일상으로 스며들어갔다. 그들에게 폭탄과 휴가 계획은 남의 일이다. 하즈키는 정확히 본인의 일이었고! 그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뛰어본 것이 언제인지 회상하려 했으나 무전 소리에 그마저도 끊기고 말았다.

[리미트 이터, 시청 4층에서 폭탄 발견. 이쪽도 해체 들어갈게.]

[알겠어요. ‘협력자' 쪽은요?]

“잠깐만요, 신호가 이 윗쪽인 것 같은데….”

열린 창문을 찾던 하즈키가 덩굴을 뻗어올려 오래된 은행의 3층으로 몸을 날렸다. 이 나이에 액션 무비를 찍자니 딱 죽을 노릇이다. 창틀에 부딪칠 뻔 하여 바닥을 한 바퀴 구른 뒤 허리를 짚으며 일어나자, 단말기의 신호가 단번에 두 단계 강해졌다. 정면의 문을 벌컥 열어젖히자….

“은행 3층에서 폭탄 발견. 해체 들어가겠습니다.”

[확인. 조심해요.]

“여부가 있겠어요.”

하즈키는 허리를 삐끗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제 영역을 꺼내어 펼쳤다.

점심부터 시작된 폭탄 제거 작전이 완전히 종료된 건 오후 7시 57분이었다. 여기저기 꼼꼼하게도 숨겨놓는 바람에 달음박질치고 담을 넘고 문을 부수면서 종일 뛰어다녀야만 했다. 어른들도 지쳤지만 에너지 넘치는 고등학생들조차 정신적 피로에 졌는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해, 쇼우가 두 사람을 업어다 에이전트들이 쓰는 수면실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러는 동안 하즈키는 얌전히 탕비실의 의자에 앉아 옷을 걷고 리히토가 붙여줄 파스를 기다리고 있었고. 앗 차가.

그리고 잠시 후, 탕비실에 모인 보람도 없이 자판기 커피를 홀짝이며 세 사람이 피곤한 대화를 시작했다.

“아직 끝이라고 하긴 이르죠?”

“그래요, 아직 범인을 붙잡지 못했으니까요. 생포한 셀리더는 오늘 새벽에 이송했지만 아직 모르는 것 같아요. 다른 지부로 사건이 넘어가기 전에… 그리고 휴가가 시작되기 전에 승부를 봐야겠어요.”

“이대로는 바다에 갔다가 발만 담그고 돌아오게 생겼어.”

“그건 절대로 안 돼요….”

“맞아, 그러니까 우리가 무리 좀 해야겠네.”

세 사람의 한숨이 지나갔다.

“…대체 왜 FH들은 휴가 시즌에만 날뛰는거죠?”

“개자식들이라 그래요.”

“여보, 입 좀.”

“네….”

그 후 그들과 똑같이 휴가 전날 야근 중인 정보팀 에이전트가 수상한 움직임과 학교 및 시청, 은행에 잠입한 흔적 따위를 취합해 가져온 자료를 두고 십여분 간 회의가 이어졌고, 남은 전투원을 모두 끌어모아 본거지를 습격하는 다소 과격한-쇼우의 말을 빌리자면 “평소의 마츠자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작전으로 결론이 지어졌다.

“다들 준비해야 하니까 10분 후 출발하는 걸로 할게.”

“그래요. 애들은 여기서 자게 둘까요?”

“옮기려다가 깨우는 것 보단 낫겠어요. 분명 따라오려고 할 테니까.”

 

합의가 끝난 듯 하여 세 사람은 슬슬 일어날 기미였다. 하즈키가 저도 모르게 끙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키자, 쇼우와 리히토가 짧게 시선을 마주치고는, 지나가듯이 물었다.

“여보, 렌트카는 어떻게 됐어요?”

“네? 아아, 그러고보니 가지러 가기로 한 시간이 지났는데… 지금 그게 중요하지는,”

“중요하지. 내일 바다 가야 하잖아.”

“맞아요. 이런 일로 휴가를 망칠 순 없잖아요.”

두 사람은 능청스레 어깨를 으쓱이며 자료와 커피캔을 정리했다. 익숙한 움직임이었다. 하즈키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허리를 문질렀다.

“…좋아요, 알았어요. 무슨 말 하는건지.”

“우리들로 괜찮으니까 안심해. 몇 년이나 합을 맞췄는지 몰라?”

“그것 참 질투 사기 좋은 발언인거 알죠?”

“어우~ 남사스러워서 정말.”

조금 쑥스러워진 리히토가 쇼우를 툭 쳤고, 쇼우는 부부가 나란히 근무하니 참 좋겠다며 투덜대고는 탕비실을 나섰다.

그리고 30분 후—

“아까 훈훈하게 보내줄 땐 참 좋았는데 말이에요!!!”

“나라고 이런 상황을 예상했겠어?!?!? 리쨩!! 다음 갈림길 오른쪽?!?”

[아뇨!! 왼쪽이요!!!!! 통행량 많아지니 조심해요!!!]

두 사람은 기대한 적 없는 추격전을 찍고 있었다. 경위를 설명하자면 너무나도 길어지므로, 본거지를 습격했더니 ‘다 망했으니 테러라도 하고 죽겠다'며 숨겨둔 마지막 폭탄을 들고 도망치기 시작했다는 정도만 알면 된다, 고 했다. 리히토는 폭탄마가 떠난 현장을 정리하며 노트북 하나를 붙잡고 네비게이터를 하고 있었다.

하즈키는 절대 레이싱에 쓰라고 만들어진 적 없는 승합차를 최고 속도로 밟으며, 자신이 렌트를 하며 같이 들어 둔 보험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기도하는 처지였다— “이 방향이면 어디로 가는거죠?!” “잠깐, 너무 흔들려서 모르겠어!”

[이 방향으로 쭉 가면— 개자식들!! 병원이에요! 5분 안에 따라잡아야 해요!!]

“입 조심 하라면서요!!!”

[지금 그게 중요해요?!?!]

하즈키는 드물게 머리 끝까지 열이 오른 듯 한 남편의 얼굴을 상상하며 곡예에 가깝도록 차선을 변경해가며 차를 몰았다. 평소같으면 레이서를 해 보는게 어떻겠느냐고 농담을 던졌을 쇼우도 폭탄의 행선지를 듣자 표정이 굳은 듯 했다. 그는, 이상하게 FH를 나온 후로 삶이 더 긴박해진 것 같다고 생각하며, 내일 자신들이 바다에 가 있을 것인지 저 병원에 누워있을 것인지 가늠하기 시작했다….

“아~빠~!! 진짜 바다 안 들어와~!?”

“응~ 아빠 수영 못하거든~!”

“에이, 재미없게!”

“언니!! 물 속에 물고기가 있어요!”

“정말?!”

당장이라도 아빠를 물에 빠트릴 것 처럼 다가오다가 금세 화제가 바뀌어 물 속으로 사라진 아키나를, 하즈키는 가벼운 손인사로 배웅했다. 그리곤 아이스박스를 내려놓고 쓰러지듯이 파라솔 그늘에 몸을 눕혔다. 몸 사리지 않는 드라이빙으로 허리의 건강이 완전히 물건너 간 탓이었다. 어제의 추격전은 인간에게도 무리였지만 차에게도 못할 짓이여서, 2년 됐다는 차가 오래된 고물차같은 엔진음을 내며 굴러가는 걸 불안한 얼굴로 끌고 와야만 했다. 쇼우의 평으로는 반납할 때 까지만 굴러가도 기적이 아닐까, 란다. 아이들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허리는 좀 괜찮아요?”

리히토가 걱정스런 눈치로 고개를 기울이곤 아이스박스를 뒤적여 캔 음료를 손에 쥐어주었다. 찬 기운이 슬슬 퍼진다. 하즈키는 쨍한 햇살에 금빛으로도 보이는 밀색 머리카락을 쳐다보며 기분좋게 웃었다. “완전 망했어요. 나이는 못 속이나봐요.”

“그런 소릴 웃으면서 잘도 한다니까.”

“뭐 어때요? 이 나이에 허리 다치는 거야 드문 일도 아니고, 결국 우린 바다에 왔고, 애들은 신났는데.”

“그래, 리쨩. 본인도 신난 것 같고, 걱정 안 해도 될걸.”

미나즈키는 쭉쭉 몸을 풀고는 곁에 내려두었던 튜브를 집어들었다. 저 사람 어제 나랑 같이 열심히 구른게 맞나? 혼자 저렇게 괜찮아보일 수 있는건가? 결국 코어근육이 모든걸 결정하는 건가? 휴가를 온 게 아니라 프로 스포츠 선수처럼 보이는 그를 쳐다보던 하즈키는 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쓰게 웃었다.

“바베큐 할 때도 침대에 드러누워 있는거 아냐?”

“그 때는 일어날 거예요. 밥은 먹어야죠.”

“그러니까 지금은 에너지 절전 상태다?”

“전 블랙독이 아니지만요.”

“신드롬 조크 레퍼토리가 늘었네~!”

크게 웃음을 터트린 쇼우가 튜브를 쏙 끼더니 바다로 달려가 아이들과 합류했다. 하즈키는 고개를 돌려 햇살이 부서지는 파도와 튜브에 담겨 동동 떠다니는 사람들을 눈에 담았다가 다시 파라솔을 올려다보았다. 들리는 건 즐거운 비명소리, 파도소리, 바람소리 뿐이었다. 그가 미소짓자 곁에 앉은 리히토가 헝클어진 머릿결을 가만가만 쓸어주었다.

“기분 좋아 보이네요.”

“응, 당신도 곁에 있고, 애들도 즐거워 보이고요. 고생한 보람이 있네요.”

“좀 심하게 고생하긴 했지만요.”

“내년에도 또 와요, 바다.”

“그래요.”

한가한 대화가 바닷바람에 파묻힌다. 하즈키는 눈을 감고 짧은 낮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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